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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트램, 그 새로운 길에 대한 명상] : : 최재근의 영상칼럼
2019. 02. 24 by 모둠티비

 오는 2025년 대전에 새로운 길이 생긴다지요.

그 길 위에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다닌다고도 하고요.

트램 얘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대우려가 동시에 교차 하는 것 같습니다.

한 쪽에서는 대중교통 확대로 보다 편리해 질 것이라고 좋아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지상에 건설되는 트램의 특성을 집어 교통혼잡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두부 자르듯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라고 할 문제는 아니지요.

아직 완공하려면 많은 날이 남아있으니 좋은 점은 살리고, 좋지 않은 점은 줄여 나가도록 노력하면 되니까요.

이참에 길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무슨 길이든 허튼 길은 없을 것입니다.

오솔길은 오솔길대로,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그리고 8차선 대로는 그 길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길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크고 넓은 길을 더 좋아하겠지요.

시원하게 뚫려있는 그런 길 말이지요. 하지만 작은 길도 그 길 나름대로 정감이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길을 만들까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요.

세상과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길은, 나 아닌 다른 곳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내어지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그 누군가는 부모님, 형제, 자매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생판 모르는 남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어갑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 배어있는 땀과 열정 그리고 눈물과 웃음도 길을 따라 흘러가다 누군가의 가슴에 머물지요.

그래서 어느 길이든, 그 길 위에는 뽀얀 먼지마냥 우리들의 이야기가 쌓인다고 하지요.

 

그 이야기들은 또 누군가를 만나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말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들은 길 위에 쌓이고 쌓여갑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지요.

이런 길에도 언제부터인가 자본의 논리가 스며들었으니 말입니다.

 

길을 만들 때도 셈을 하게 되는 우리의 처지가 참으로 곤궁해보입니다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

이제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어도, 세상에 나오고 싶어도 길을 내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트램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신선했습니다.

돈의 노예로 전락한 길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최소한 돈벌이를 빌미로 길을 막지는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트램은 이전과는 다른 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비록 돈을 잘 벌지는 못해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이를 만나게 해주는 수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뜨거운 길이 됐으면 합니다.
 

트램이란 길에서 우리 만날 때 고단한 삶을 서로 기대게 하고, 눈물과 웃음을 서로 껴안아 주며, 잠시나마라도 고단한 삶을 쉬어가게 해 줄 수 있는 길이 됐으면 합니다.

저 혼자 잘난 길이 아니라 작은 길부터 큰 길까지 모든 길과 만나고, 서로 배려하며 새로운 길로 다시 나아가는 길이 됐으면 합니다.

길에서 소외된 이 없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되는 길이 됐으면 합니다.

 

물론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길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희망을 가져보려 합니다.

길에서 길을 찾는 다면 가능할 듯도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특별한 길이 생기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기획·제작 / #모둠티비, http://modu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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