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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박스_②진실은 피보다 진하다] : : 고광률 · 최재근의 '영화인문학'
2019. 03. 13 by 모둠티비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통해 이념과 가치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영화의 재미와 감동이라는 단맛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라는 쓴맛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면의 단맛은 잠깐이고 또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쓴맛은 몸속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도록 자못 지속적인 효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옛날이야기나 소설은 짓는데 있어 큰돈이 들지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제작하는데 돈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는 광고들이 붙어 돈줄이 되어주지만(때문에 인기가 없으면 조기 종영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한꺼번에 거대자본이 들어가지요. 그래서 영화제작은 자본의 논리와 시대적 정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자본과 정치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시대적 트렌드를 필요조건으로 담고 있습니다. 뭐 거창하게 얘기할 것도 없이 그래야만, 즉 시대의 정신(정서)을 담아내야만 실패의 확률이 적은 것입니다.

[고광률]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소설집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오래된 뿔’ 등을 발표하였다. 수년 간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최재근: 그런데 영화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프레임이 나오던데요. 궁지에 몰린 과거 우리 독재 정권이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죠. 궁지에 몰린 전범이 공산주의 프레임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더라고요? 요즘 얘기로 하면 색깔론이죠.

▲고광률 : 애니(제시카 랭)의 아버지 라즐로(아민 뮬러-스탈)에게 일리노이주 버크(프레드릭 포레스트) 연방검사로부터 출두를 요청서가 날아옵니다. 40년 전 나치 전범으로 의심된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라즐로는 변호사인 딸 애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애니는 소속된 사무실을 잠시 정리하고, 시아버지 해리 텔버트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일종의 대형 로펌)로 들어갑니다. 시아버지는 독일 출신으로 나치와 관련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극우보수주의자인데, 나름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입니다. 이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재판 변호에 따른 프레임[전략]을 짜줍니다. 반유대주의와 공산주의 프레임입니다. 진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피해망상과 복수심에 가득 찬 유대주의자들로 몰고, 공산주의자들의 음모가 개입된 것으로 몹니다. 이 프레임은 라즐로가 원하는 프레임이기도 합니다. 라즐로는 이 프레임을 염두에 두고, 5년 전 헝가리 무용단이 미국에 와서 공연을 할 때, 난장판을 벌인 것입니다(헝가리는 당시 사회주의국가였습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애니는 서로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진실보다는 ‘승리’입니다. 또한 시아버지와 아버지는 한통속입니다. 아마 전 남편과의 결혼도, 애니가 유능하기 때문에, 또 자신과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아버지가 정략적으로 시킨 것으로 의심됩니다. 아무튼 전 남편보다 시아버지와 매우 친합니다. 이혼을 하고도 텔버트라는 시댁 성을 쓸 정도입니다. 물론 시아버지 집안의 권위도 쓸 수 있다는 이점도 계산된 것이겠지요.

△최재근: 그리고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패륜’ 어쩌고 하더라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광률 : 친딸(애니)이 나치에 복무해 잔혹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부인하며 끝내 반성하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를 ‘청산’합니다. 딸 애니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의 과거[진실]를 찾아낸 뒤, 아버지인지라 묻어두려고 했다가 청산에 나서는데, 그 시사하는 바와 이유가 엄중하고 삼엄합니다. 혹자들은 이걸 두고 ‘패륜’ 어쩌고 하기도 하지만 패륜 프레임은 문제의 본질을,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패륜이 아니라, 반성할 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불가피한 심판인 것입니다. 딸은 아버지가 진심으로 반성하기를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성은커녕 그 동안 가슴속에 잘 갈무리해 온 나치즘을 손자에게 계승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딸 애니가 그 끔직한 가능성을 예감한 것입니다. 그 덕에 애니는 그 재판에서 승리합니다.

△최재근: 그렇죠. 그렇게 끝나면 안되죠. 반전은 후반부에 시작됩니다. 애니가 재판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란치드 다리(아버지의 학살 만행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곳)에서 다뉴브 강을 바라보다가 문득 업무조력자 조진 휠러가 넘겨준 티보 졸탄의 여동생 집을 찾아갑니다. 조진의 조사에 의하면, 라즐로가 그 졸탄에게 적지 않은 액수를 지속적으로 송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궁금한 애니가 헝가리에 온 길에 그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졸탄의 여동생이 오빠의 유품 중 전당표를 내줍니다. 미국에 돌아가면 전당물을 찾아서 보내달라고 부탁하면서요. 미국으로 돌아온 애니는 전당포로 갑니다. 그리고 졸탄이 맡긴 뮤직박스를 찾습니다. 그 뮤직박스 안에서 아버지의 40년 전 진실이 쏟아져 나옵니다. 대여섯 장으로 보이는 사진을 통해 아버지가 확실한 학살자임이, 증언자들의 증언이 모두 사실임이 밝혀집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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